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왕과 비 (문단 편집) == 비판 == 대책 없는 [[세조(조선)|수양대군]] 미화로 악명 높다. [[조선왕조실록]]을 많이 참고하여 썼다고 하기는 하나,[* 정작 [[김종서(조선)|김종서]]나 [[혜빈 양씨]] 등 극중 부정적 인물들을 표현할 때에는 실록에도 없는 악행들을 창작하여 깎아내린다.] 이는 신뢰성이 높지 않은 [[단종실록]]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을 방증하기도 하며, 덕분에 드라마에서 [[계유정난]]이 상당히 긍정적으로 묘사되어 방영 당시 많은 비판을 받았다.[* [[단종실록]]은 왕위 찬탈의 주역들이 쓴 것이라 [[수양대군|세조]]를 미화하다 못해 앞뒤가 들어맞지 않는 내용까지 간간이 있을 정도라, 반드시 다른 사료와 [[교차검증]]하며 읽어야 한다. 애초에 편찬될 때 '''노산군일기'''라는 제목으로 편찬된 실록인 만큼, 그 내용이 어떤지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 한마디로 정리되는 수준. 사실 [[단종실록]]이라는 제목도 훗날 [[숙종(조선)|숙종]]이 단종을 복위시켰을 때 겉표지만 바꾼 것이고, 내용을 여러 보면 여전히 단종은 노산군, 수양대군은 세조라고 되어 있다.] [[김종서(조선)|김종서]]는 꽤나 음험한 인물로 나오며[* [[단종(조선)|단종]]을 옹위하기 위해 다소 과격한 언행도 주저없이 한다는 점이 크다. 다만 이런 행보는 단종에게 나름대로 충성을 바치기 위함이라는 점은 계속해서 강조되며, 살해당한 후 나오는 나레이션은 "[[김종서(조선)|김종서]], 그는 만고의 충신이다."로 마무리된다. 다만 [[문종(조선)|문종]]이 [[수양대군]] 앞에서는 김종서를 의심하고 김종서 앞에서는 수양을 의심하는 태도를 보이고 이후에도 김종서의 캐릭터가 전형적인 '충신 명재상'과는 거리가 멀어 눈에 잘 안 보일 뿐. 완성된 살생부를 살피던 [[수양대군]]도 "김종서의 충성심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는 뉘앙스의 촌평을 남겼다.], [[안평대군]]은 빼박 역모의 진주인공, [[계유정난]]의 주인공 수양대군은 선역으로 나온다. 한편으로는 수양대군의 최측근들인 [[한명회]]나 [[홍윤성]], [[양녕대군]]은 악역에 가깝게 묘사되는 점이 아이러니할 수 있으나, 이는 수양대군이 저지른 악행들을 떠넘길 상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놀랄 것도 없다.[* 다만 [[한명회]]는 악역에 가까우면서도 어느 정도 간웅의 이미지를 보여줬고[* 오랫동안 개성의 경덕궁지기로 가난하게 살다가 도원군부인이었던 [[인수대비]]가 쌀과 값비싼 재물들을 하사해줬는데 하사받은 쌀과 재물들을 자신의 수하들에게 죄다 나눠져버려 이 때문에 집안 창고가 다시 텅텅 비게 되고 아내 민 씨에게 잔소리까지 들었을 정도. 그만큼 권력을 가질 수 있다면 이깟 재물은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명회]]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홍윤성]]은 다소 악역이면서도 어느 정도 인수대비를 편드는 등 의리를 지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애초에 수양대군이 그런 인물들을 가까이했다는 것 자체가 수양대군의 잘못이므로 본작의 그런 묘사 또한 엄연히 잘못된 묘사다. 바로 이전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한명회(드라마)|한명회]]와 대조되는 점이다.[[http://1004eyes.com/bbs/view.php?id=eng_history&no=31|#]] 기본적으로 영웅적인 주인공에게도 결함이나 약점 같은 것이 있고, 그로 인해 결국 몰락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고대 그리스]]의 비극 이래 오랫동안 내려온 줄거리이며, 작가 정하연은 현대 [[한국]]의 드라마 작가들 중에서 이러한 구도를 잘 답습하고 있다. 이 줄거리에 맞추어 보면 [[세조(조선)|수양대군]]이라는 주인공은 즉위라는 영웅적인 성취를 이루지만, '자식처럼 아끼던 조카의 왕위를 탈취했다.'는 결함을 동시에 안게 된다. 그리고 수양대군은 권력의 비정함으로 인해 망가져 가는데, 이러한 전개를 선택한 작가의 의도는 '권력의 무서움과 권력으로 인해 초래되는 인간성의 황폐화'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극 초반부에는 나약하게 묘사되지만, 강한 권력의지와 아들에게 그 권력을 [[대물림]]하려는 욕망을 드러내는 [[문종(조선)|문종]]은 [[수양대군]]과 구체적인 이유는 다르지만, 역시 권력으로 인해 황폐해진 인간의 내면을 드러내보인다. 하다못해 이 드라마는 김종서를 너무 지나치게 폄하를 하였는데 문종의 국상 기간동안 자신의 부하들을 풀어 민가를 감시하게 하고 문종을 향해 곡을 하는 백성을 향해 신나게 두들겨 패기까지 한 말도 안 되는 내용까지 썼다. 그 이유라는 것이 "새 임금이 즉위하셨는데 이미 죽은 왕에게 곡을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느냐"였는데, 실록에 없는 소리인데다 왕실 법도와도 전혀 맞지 않는다. 드라마 극초반부터 권력에 강한 관심을 드러냈고, 남편 [[의경세자]]의 사망과 함께 사저로 내쫓기자 절망했다가, 결국 아들 [[성종(조선)|성종]]을 왕위에 올리며 권력을 향해 무한전진했던 주인공 [[인수대비]] 역시 손자 [[연산군]]에 의해 못 볼 꼴 다보고 허망하게 사망. 죽은 후에도 [[후궁]]의 예로 장사지내지는 등 푸대접을 받는데 이 역시 권력의 무상함을 표현한다. 그리고 세조와 더불어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주인공인 인수대비의 경우, 자신의 시아버지가 극 중에서 지나치게 미화된 것과 정반대로 실제 역사보다 훨씬 더 냉혹하고 잔인하게 묘사된다. 극 중 인수대비는 왕위와는 거리가 먼 종친의 군부인 시절부터 [[왕비]]가 되고자 하는 자신의 욕망을 거리낌없이 드러내며 시아버지의 측근들을 모아놓고 하루빨리 시아버지가 [[이홍위|단종]]으로부터 [[옥새]]를 받아야 한다고 누구보다 강하게 어필하고, 자신의 권력유지에 있어 조금이라도 방해가 된다면 설사 친가족이라도 거리낌없이 제거한다. 드라마 막판에 [[연산군|이 사람]]이 등장하기 전까지 [[인수대비]]는 그야말로 이 드라마의 거의 [[최종 보스]]급 존재감을 과시하는 편. 요약하자면, 이 드라마는 역사적 기록을 '''취사선택'''하여 주제의식을 표현할 수 있는 인물상을 표현한 것이다. 즉, 수양대군 미화로 비판하기엔 정하연이 자신의 주제 의식을 드러내기 위해 일부러 실록을 그대로 따라간 것이라 비판만 하긴 애매하다. 후반부로 갈수록 개인사의 비극과 단종에 대한 죄책감에 처절히 몸부림치는 세조를 보자면 정하연은 세조를 비판하기 위해 실록에 묘사된 충성스럽고 자애로운 숙부를 취한 것이라고 볼 여지도 있을 정도로 임동진이 연기한 세조 연기가 대단하기도 했다. 초반 시청률이 부진했던 원인은 크게 2가지였는데, 그 중 하나는 극의 내적 요소에 있었고, 다른 하나는 고증 차원이었다. 먼저 [[문종(조선)|문종]]을 중심으로 한 조정대신들의 대사는 [[드라마]]가 아닌 [[연극]] 대사에 가까웠으며, 극의 분위기 또한 진중하다 못해 음침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화끈한 면모를 보일 것으로 기대되었던 주인공 [[수양대군]]은 너무 선하고 잔뜩 미화된 모습으로 그려진 데다가, 형 문종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온 후에 [[정희왕후|아내 윤씨]]의 품에 안겨 울 정도로 정세를 살피는 능력이 없는 것으로 묘사된다. 다시 말해 극초반부에 극의 한 축은 너무 음침하고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하겠고, 주인공으로 설정된 캐릭터는 [[계유정난]]을 일으키기 전까지 가만히 앉아서 눈물이나 찔찔 짜는 것 말고는 하는 게 없다. 한편 상술했듯이 고증도 뛰어나다고 말하기 어려운데, 무엇보다 세조를 지나치게 미화했기 때문이다. 특히 세조가 승하할 때 '세조가 세종대왕의 가장 뛰어난 아들임을 부인할 수 없다.'고까지 평하는 행각을 벌였으며, '[[경국대전]] 편찬', '호패법[* 그러나 당시 백성들에게는 악법으로 취급되었다.]', '중국의 속국이 아닌 자주국 지향' 등 세조의 행적을 찬양하는 내레이션이 나온다. 조카의 왕위를 찬탈했다는 치명적인 도덕적 결함으로 인해 악업이 더 커서 가려진다며 비판하기도 했지만, 내레이션을 아무리 들어 봐도 공정한 평가라고 느끼기는 어렵다. 이를 의식한 모양인지 1화부터 "세자([[문종(조선)|문종]])의 인품과 능력이 어찌 [[수양대군]]만 못하겠습니까. 다만 병약한 게 마음에 걸립니다"라고 [[양녕대군]]의 입을 빌려 문종의 능력이 세조보다 낮지 않음을 밝히긴 했으나 그 뒤의 전개와 묘사를 보면 다 부질없어 보일 정도로 세조 미화가 강하다.[* 결과적으로 FM스러운 3년상을 치르고 과로하다 건강을 헤쳐 단명하긴 했지만, [[문종(조선)|문종]]은 생전에 풍채도 당당하고 능력이나 인품 면에서 흠잡을 것이 없는 뛰어난 인물이었다. 어린 나이에 세자로 책봉되었으며 세종 말년 7년간은 대리청정하며 사실상 왕노릇을 하였고, 그 기간동안 업적도 화려했다. 세자 시절 그는 3살 어린 동생 '''따위'''와 비교될 일이 전혀 없는 확고부동한 후계자였다. "[[세조(조선)|수양대군]]만 못하겠는가"는 애초에 수양의 능력이 세자보다 최소한 못하진 않다는 전제를 깔고 하는 얘기인데, 정통성이건 능력이건 비교도 되지 않는 세자를, 그리 눈에 띄지도 않는 왕자 중 하나에 불과한 수양대군과 저렇게 비교를 했을 리가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작중에서 미화된 세조의 모습이 아닌 실제 세조의 긍정적인 모습은 그다지 잘 다뤄지지도 않았다. 경국대전 편찬 등 세조의 진짜 업적들을 제대로 다루었다면 모를까, 정작 그런 업적들은 내레이션으로만 나오고 계유정난 미화에 치중된 모습을 보여서 세조의 진짜 긍정적인 모습도 아내와 자식들에 대한 가족애를 제외하면 사실상 다루어지지 않은 거나 다름없다. 사실 미화가 지나치다고 비판받은 것이지, 세조 역을 맡은 [[임동진]]의 열연은 매우 뛰어났다. 특히 111회, 최후를 앞둔 장면에서는 꿈에서 [[단종(조선)|단종]]이 "숙부님, 저와 같이 가요"라고 해서 따라갔더니 나오는 곳이 단종이 묻힌 곳. 그 앞에서 단종이 울면서 "추워요, 꺼내주세요"라고 하자, '''"홍위야! 내 조카가 이런 곳에 묻혀 있었단 말이냐! 내가 꺼내주마! 조금만 기다리거라!"'''하고 울부짖으면서 무덤을 파헤지는 장면은 온 몸에 소름이 돋을 지경. 그 밖에 단종 전문 배우 [[정태우]]는 아마도 생애 마지막으로 맡게 된 단종 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냈고, 이 드라마로 대상 수상의 영광을 누린 [[채시라]]의 열연 역시 뛰어났다.[* 40대 이상의 경우 [[인수대비]] 하면 [[고두심]]과 [[반효정]]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30대부턴 [[채시라]]를 꼽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채시라는 15년 후 [[JTBC]]에서 제작한 [[인수대비(드라마)|인수대비]]에서 또 다시 인수대비 역으로 좋은 연기를 선보인다.] 노회하면서도 능글맞은 [[한명회]] 역을 맡은 배우 [[최종원]]도 빼놓을 수 없으며, 왕실지상주의자 [[양녕대군]]을 맡은 [[신구]]의 연기나 근엄하면서도 왕실의 풍파에 회의를 느끼는 중견 배우 [[한혜숙]]의 모습도 괜찮은 편. 드라마의 평가 및 시청률이 상승한 것은 후반부에 이르러 [[인수대비]]로 주인공이 전환되고, [[성종(조선)|성종]]을 거쳐 [[연산군]] 대에 이르러 극중 긴장감이 올라가면서였다. 전개도 [[세조(조선)|세조]] 대처럼 진득하게 끌지 않으면서 인물들 간 갈등구조가 더욱 첨예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시청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은 것. 대신 이 때에는 연산군의 악행에 대해 지나치게 고어한 묘사로 인해 다른 의미에서 나쁜 평을 받게 되었다. 그 때문에서인지, 전작인 [[용의 눈물]]이 드라마가 끝나갈 때 즈음 거의 이견 없이 세간의 찬사를 불러모았던 것과 달리, <왕과 비>는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드라마가 대단원을 마친다' 식으로 보도되었다. 오늘날에도 <[[용의 눈물]]>이 역대 최고의 사극 중 하나로 회자되는 것과 달리, <왕과 비>에 대해서는 '전작에 못 미치는 후속작' 정도로 평가가 엇갈리는 것도 이러한 기억이 이어진 것. 게다가 차기 작품인 [[후삼국시대]]를 다루면서 여러 네타를 남긴 [[태조 왕건]]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두 대작 사이에 끼어버린 작품이라는 미묘한 위치에 처해버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